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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재킹 실화 사건 대한항공 포커 27기 납북 미수 사건 납치범 사진

by 리서치앤픽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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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주연의 영화 하이재킹은 지난 1971년 1월 23일 오후 1시 30분경 승객 55명과 승무원 5명을 태운 속초공항에서 김포 국제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의 포커 27(F27)이 강원도 홍천상공에서 하이재킹(항공기납치)당해 납북될 뻔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관심 못지않게 실제 있었던 이 납북 미수 사건에 대한 관심도 상당합니다. 사건을 재조명해봅니다.

 

사건 배경과 정부의 대처


1958년과 1969년에 발생한 창량호와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이후, 정부는 보안검색 강화, 승객의 익명 및 타인 명의 사용 금지, 비행장 직원에게 사법권 부여, 항공 보안관 탑승, 조종사에게 권총 지급, 조종실 문 잠금 규정 등의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이러한 대처에도 불구하고, 1971년 사건은 불행히도 이러한 보안 조치를 뚫고 발생했습니다.

 

승무원 인적 정보


기장 이강흔은 공군 대령으로 예편한 후 대한항공에 입사한 37세의 베테랑 조종사였습니다. 부기장 박완규는 6.25 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베테랑 조종사였고, 수습 조종사 전명세는 육군항공대 출신으로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이강흔 기장에게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항공 보안관 최천일은 훈련받은 14명의 항공 보안관 중 한 명이었으며, 객실 승무원 최석자도 탑승 중이었습니다.

 

납치범 인적 정보

 

납치범 김상태는 당시 22세의 무직 청년으로, 강원도 고성군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납치 동기는 불명확하지만, 북한에서 납북 공작원들이 대우받는다는 기사를 보고 자극받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건 이후 조사 결과, 김상태는 간첩이 아니었고 북한의 대남 도발도 아니었습니다. 22살이 사제폭탄을 만들어 비행기를 납치한다고 하다니 지금의 이대남과는  다른 모습일까요?

납치범 김상태의 사진
납치범 김상태의 사진

사건 전개- 탑승과 이륙

김상태는 사제 폭탄을 소지하고 속초공항에서 대한항공 포커 27 여객기에 탑승했습니다. 오후 1시 7분, 54명의 승객과 승무원 5명을 태운 여객기는 이륙했습니다. 김상태는 보안검색을 무사히 통과했지만, 이는 공항의 구형 금속탐지기와 느슨한 검문 때문이었습니다.

납치 개시

오후 1시 34분, 이륙한 지 27분 후 홍천 상공에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조종실 문이 부서지면서 김상태는 남은 폭탄을 들고 조종사들에게 북으로 기수를 돌리라고 강요했습니다. 이강흔 기장은 일단 협박에 순응하는 척하며 비상착륙을 시도했지만, 김상태가 고향인 화진포를 알아채면서 실패했습니다.

공군의 긴급출격

폭탄이 터지자마자 이강흔 기장은 납치 사실을 무전으로 알렸고, 공군은 F-5A 전투기 2대를 긴급출격시켰습니다. 이 전투기들은 납치된 여객기를 에워싸며 북쪽으로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제압과 희생

최석자와 최천일은 승객들에게 범인을 속이기 위해 통곡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강흔 기장은 F-5를 북한의 미그기로 속였습니다. 김상태가 시선을 돌린 순간, 최천일과 전명세는 김상태를 저격했습니다. 김상태는 최천일의 총에 맞아 쓰러졌지만, 폭탄이 떨어져 점화되었습니다. 전명세는 몸으로 폭탄을 덮어 피해를 최소화했지만, 결국 중상을 입고 후송 중 사망했습니다. 고 전명세 조종사는 후송되는 과정에서 "탑승객이 다칠까 봐 몸을  던졌다"는 유언을 남기고 안타깝게도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고 전명세 조종사 영정


납치범 김상태는 사살되었지만 항공기는 두 번의 폭탄 폭발로 인해 객실이 파손되고 여압이 상실, 조종계통도 손상되어 비상착륙을 시도하게 됩니다. 천만다행으로 이강흔 기장이  기체를 급강하시켜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바닷가에 비상 착륙을 성공시킵니다. 기체는 양 날개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거친 착륙이었고 착륙 시의 충격으로 기체가 폭발하거나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었지만 바닷가의 모래가 완충작용하여 다행히 본체는 온전하게 착륙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승객 대부분은 가벼운 부상에 그치게 되었고요.

 

당시 불시착한 포커27

 

사건 이후

 

전명세 수습 조종사는 사후 정식 조종사로 추서 되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고, 이강흔 기장은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 후 복귀했습니다. 사건은 반공교육에 널리 활용되었는데, 이후 80년대까지 아웅산 폭탄테러와 칼기폭파테러 사건까지 북한의 대북공작은 계속 이어져 내려와 2024년 오물풍선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씁쓸한 역사적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 하이재킹에는 이러한 정치적 요소는 없겠지만 북한의 일련의 대남공작과 이에 의해 희생당한 국민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덧붙여 읽어볼 만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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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npick1.tistory.com

일부에서는 폭탄을 들고 있는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고 우선 북으로 갔다가 다시 송환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더 안전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위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2년 전 비행기 납치사건에서 승무원들은 돌아오지 못했던 사실을 이강흔 기장을 포함한 승무원들은 잘 알고 있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긴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22살의 철없는 사내의 비행기납치에서부터 용감한 수습조종사의 살신성인의 희생과 기장의 비상착륙까지 시대상과 결합한 여러 가지 복잡한 실로 극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2024년에 영화로 제작되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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